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제약공장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전망입니다. 바로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입니다.
2026년 10월 12일 국가유산청은 공장동과 연구동, 수위실 등 3개 건축물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습니다. 평범한 산업시설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1950년대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시도가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제약공장이 왜 건축유산으로 평가받는지, 건축사의 시선으로 그 특징과 보존 가치를 살펴보겠습니다.
📑 이 글의 목차
1. 김중업은 왜 제약공장을 설계했을까?
2. 공장동·연구동·수위실의 건축적 특징
3. 오래된 공장이 건축유산이 되는 이유
🔷 김중업은 왜 제약공장을 설계했을까?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1950년대 후반에 조성된 제약 생산시설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 기반을 복구하던 시기에 건립된 이곳은 의약품 원료 반입부터 생산과 연구까지 여러 기능을 갖춘 산업시설이었습니다.
당시 공장은 생산성을 높이고 건설비를 절감하는 것이 중요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건축적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인 공간 구성과 설비 배치가 우선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유산업은 공장 설계를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1922~1988)에게 맡겼습니다.
김중업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건축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주한 프랑스대사관, 삼일빌딩, 서울올림픽 평화의 문 등이 있습니다.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그가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 설계한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시설에도 독창적인 건축적 표현을 적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김중업은 공장이라는 건축물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구조와 입면, 공간 구성에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담았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산업시설도 단순한 생산 공간을 넘어 하나의 건축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 공장동·연구동·수위실의 건축적 특징
이번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대상은 김중업이 설계한 공장동, 연구동, 수위실입니다.
1958년부터 1960년 사이에 건립된 세 건축물은 각각 생산과 연구, 출입 관리라는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각 건축물이 가진 기능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와 공간적 특징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 공장동|수평선으로 표현한 산업건축

건립연도 : 1960년
건축 규모 : 지상 3층
건축면적 : 1,036.32㎡
연면적 : 2,394.16㎡
공장동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의 수평성을 강조한 입면입니다.
특히 2층 외벽에서 길게 이어지는 수평적인 구성은 건축물의 형태를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면서 산업시설 특유의 길고 넓은 공간감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수평적 입면 구성은 근대건축에서 자주 활용된 건축적 표현입니다.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근대건축가들은 건물의 구조와 외벽을 합리적으로 구성하면서 수평적인 창과 명확한 입면 질서를 강조했습니다.
김중업의 공장동에서도 이러한 근대건축의 조형적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수평적인 입면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건축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장이라는 건축물의 기능과 공간 구성 역시 중요한 설계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장동 내부에는 자연채광을 위한 천창도 설치됐습니다.
천창은 지붕을 통해 자연광을 실내로 유입하는 건축 요소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장과 같이 내부 공간이 깊은 건축물은 외벽의 창문만으로 실내 중앙부까지 충분한 자연광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천창은 건물 내부까지 빛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2층 외부 모서리에 설치된 조각물입니다.
생산성과 경제성이 우선되는 산업시설에 조각적 요소를 배치했다는 점은 당시 공장건축으로서는 특별한 시도였습니다.
건축을 단순히 기능을 수용하는 구조물로만 보지 않고 예술적 표현이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공장동은 산업시설의 기능적인 합리성과 건축적 조형성을 결합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 연구동|구조가 건축의 디자인이 되다

건립연도 : 1959년
건축 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면적 : 427.91㎡
연면적 : 593.72㎡
연구동은 김중업의 초기 건축적 특징을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건축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외벽 밖으로 돌출된 기둥과 보입니다.
남북측 외벽에 드러난 5개의 기둥과 보 구조물은 건물의 외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형적 요소입니다.
일반적인 건축물에서는 기둥과 보가 건축물의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연구동에서는 이러한 구조 요소를 외부로 드러내어 입면의 특징으로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구조를 감추지 않고 건축물의 외관에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근대건축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연구동의 입면에서는 구조적인 질서가 반복되면서 건물 전체에 일정한 리듬감을 만들어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유유산업의 상징을 형상화한 쌍Y자형 기둥입니다.
이 기둥은 출입구의 캐노피를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됐습니다.
캐노피는 건물 출입구 등에 설치해 비와 햇빛을 막아주는 덮개 구조물입니다.
김중업은 이러한 기능적인 건축 요소에 기업의 상징성을 결합했습니다.
단순히 회사의 로고를 외벽에 부착하는 대신, 건축물의 구조와 형태 자체를 통해 기업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외벽보다 돌출된 창호 프레임도 특징적입니다.
창호는 원래 채광과 환기를 위한 기능적 요소이지만, 이 건물에서는 입면에 깊이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조형적 역할도 담당합니다.
건축사의 관점에서 보면 연구동은 건축을 구성하는 구조와 창호, 출입구가 각각 독립된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으로 통합된 사례입니다.
건물의 구조적 특징을 숨기지 않고 건축적 표현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 연구동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 수위실|18㎡ 작은 건축물의 놀라운 조형성

건립연도 : 1958년
건축 규모 : 지하 1층, 지상 1층
건축면적 : 18.45㎡
연면적 : 28.83㎡
세 건축물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수위실입니다.
건축면적이 18.45㎡에 불과한 작은 건축물이지만 형태와 공간 구성에서 매우 독특한 조형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원통형으로 계획된 건물 형태입니다.
일반적인 수위실은 작은 사각형 평면에 출입문과 창문을 설치하는 단순한 형태로 계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김중업은 수위실이 담당하는 기능에 주목했습니다.
수위실은 건물 출입구를 관리하고 주변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특정 방향만 바라보는 것보다 여러 방향으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중업은 이러한 기능적 요구를 원통형 건축물로 풀어냈습니다.
원형 평면을 활용해 주변 360도 방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계획한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평면을 원형으로 만든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층 바닥을 높게 설치하고 외부 계단으로 접근하도록 했으며, 원통형 몸체와 수평적인 지붕선이 어우러지도록 설계했습니다.
높게 올라간 바닥과 외부 계단, 수평적인 지붕의 조합은 작은 건축물임에도 강한 조형적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건축물의 높이를 조절하고 접근 동선을 외부에 드러냄으로써 작은 수위실에 입체적인 공간감을 부여한 것입니다.
특히 수위실은 기능과 형태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주변을 관찰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요구를 원형 평면으로 해결하면서, 그 자체가 독창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발전했습니다.
건축물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건축적 가치까지 작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세 건축물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설계 철학
공장동과 연구동, 수위실은 외관만 보면 서로 다른 건축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건축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먼저 건축물의 기능을 형태와 밀접하게 연결했다는 점입니다.
공장동은 생산 공간에 적합한 수평적인 입면과 천창을 활용했고, 연구동은 구조와 창호를 외관의 디자인 요소로 발전시켰습니다.
수위실에서는 주변을 관찰하는 기능을 원통형 건축물로 표현했습니다.
두 번째는 구조와 형태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기둥과 보, 창호 프레임, 지붕선 등은 건물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김중업은 이를 건축물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능적인 산업시설에도 예술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특징은 김중업이 서구 근대건축을 경험한 이후 한국에서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던 초기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 오래된 공장이 건축유산이 되는 이유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산업시설로서의 역할을 마친 이후 철거되지 않고 새로운 용도로 활용됐습니다.
유유제약의 공장 이전 이후 안양시는 옛 공장 부지를 매입했고, 기존 건축물을 활용해 문화시설을 조성했습니다.
2014년에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현재 옛 산업시설은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 등이 자리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건축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가 직접 설계했던 건축물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방문객은 전시된 설계도면과 건축모형을 살펴보는 동시에 실제 건축물의 구조와 입면, 공간 구성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건축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면과 사진도 중요하지만 실제 공간을 경험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산업시설이 문화시설로 변화하는 건축 재생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건축 재생은 기존 건축물을 단순히 수리하는 작업과는 다릅니다.
건물의 역사적 가치와 건축적 특징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용도에 적합하도록 공간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기존 구조체의 안전성, 새로운 용도에 따른 피난과 방화 기준, 설비 및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건축물의 외관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기존 건축이 가진 공간적 가치를 어떻게 유지하고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이러한 산업시설의 보존과 재활용이 결합된 사례입니다.
우리는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궁궐이나 사찰, 전통가옥 등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산업시설 역시 그 시대의 생산 방식과 기술 수준,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특히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산업사적인 의미에 더해 한국 현대건축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도 갖고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거대한 건축물만이 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의 기술과 건축적 사고, 공간 구성, 사회적 배경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등록 예고가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2026년 10월 12일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습니다.
이미 등록된 김중업의 주요 작품으로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추모관과 정문, 부산대학교 구 본관, 부산대학교 무지개문 및 수위실 등이 있습니다.
이번 등록이 확정된다면 김중업의 작품 가운데 네 번째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사례가 됩니다.
다만 2026년 10월 12일 현재 최종 등록이 확정된 상태는 아닙니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후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건축사의 시선|건축물의 가치는 사용이 끝난 뒤에도 남습니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건물의 용도와 기능입니다.
공장은 생산을 위해 설계하고 연구소는 연구 활동에 적합하도록 공간을 구성합니다.
그러나 처음 계획했던 용도가 끝났다고 해서 건축물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이 좋은 사례입니다.
의약품을 생산하던 산업시설이 지금은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건축사의 관점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기존 건축물의 특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수용했다는 점입니다.
오래된 건물을 활용할 때는 단순히 외관을 보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건물의 구조적 특징과 공간적 가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용도에 맞는 안전성과 사용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함께 필요합니다.
기존 건축물의 보존과 활용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건축물에 새로운 시간을 부여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1950년대 말 설계된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은 처음부터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의약품 생산과 연구를 위한 실용적인 산업시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중업은 이러한 건축물에도 독창적인 구조와 형태, 예술적 표현을 담았습니다.
6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공장동의 수평적인 입면과 연구동의 구조적 표현, 원통형 수위실의 조형성은 한국 현대건축의 중요
한 흔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축물을 무조건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존 건축물이 가진 역사와 공간적 가치를 살리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건축은 처음 지어진 순간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건축 이야기입니다.
📌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 건축물 정보
건축물명 :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
설계자 : 김중업(1922~1988)
수위실 : 1958년 건립
연구동 : 1959년 건립
공장동 : 1960년 건립
소재지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 4 일대
현재 활용 : 김중업건축박물관·안양박물관 등
문화유산 현황 : 2026년 10월 12일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참고자료
국가유산청, 2026년 10월 12일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발표
연합뉴스|김중업이 설계한 공장·광주극장·옛 대전공회당, 국가유산 된다
뉴시스|김중업 초기작 안양 제약공장, 국가등록문화유산 된다
※ 이 글은 2026년 10월 12일 발표된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건축물의 등록 여부와 현황은 향후 행정절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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